응급실 신원 미상 환자 전송시
응급실에 실려 온 신원 미상 환자에게 이름을 찾아주는 일. 그것은 의사가 멈춰가는 심장을 살리듯, 꺼져가는 ‘사회적 생명’의 불씨를 되살리는 과정입니다. 이름과 나이, 연고지마저 지워진 채 실려 온 이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서 잠시 튕겨 나간 녹슨 나사못과 같습니다. 그럴 때면 누군가 내게 묻습니다.
“의료진도 아닌 사회복지사가 그 긴박한 틈바구니에서 할 일이 있나요?”
뉴질랜드 응급실에서 5년째 근무하며 마주하는 시선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 환자 분들을 만날 때면, 나를 길 안내를 돕는 봉사자쯤으로 여기며 안쓰러운 눈길을 보냅니다. 타국 땅에서 고생이 많다는 위로지요. 한국에 계신 어머니조차 “병원에서 일한다고? 거 뭐, 바닥 쓸고 닦는 일 하느냐?”라고 물으실 정도니, 나의 노동은 배경음악처럼 존재하지만 들리지 않는, 혹은 유령의 발자국처럼 투명하게 취급받곤 합니다.
하지만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가 들어오는 순간, 나의 시간은 의료진의 시계만큼 가파르게 흐르기 시작합니다. 의사가 심장을 붙들려 사투를 벌일 때, 나는 환자의 ‘사회적 생명’을 지키려 촌각을 다툽니다. 지문 하나로 모든 정보가 드러나는 한국과 달리, 뉴질랜드에서 연고 없는 이의 흔적을 찾는 일은 짙은 안개 속을 맨발로 걷는 것과 같습니다. 의식 없는 환자를 마주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낮은 기도를 올립니다.
‘제발, 이 차가운 침대 위 환자에게 소중한 이름을 되찾아줄 수 있기를.’

신원 미상 환자 지원 사례
“빙봉빙봉—”
정적을 깨고 응급실 천장을 찢는 듯한 트라우마 콜(Trauma Call)이 울려 퍼집니다. 형광등 불빛마저 파르르 떨게 만드는 그 소리는 예고 없는 죽음이 보낸 전령 같습니다. 수간호사(ACNM)가 다급하게 사무실 문을 두드립니다.
“신원 미상 환자입니다. 길거리 심정지, 의식 없음. GCS 점수 5점입니다.”
GCS 5점. 뇌 손상 정도를 측정하는 이 차가운 숫자는 곧장 붉은 위기 신호로 치환됩니다. 눈을 뜨지도, 소리를 내지도 못하며 자가 호흡조차 불가능한 상태. 기계의 규칙적인 박동에 목숨을 의지해야 하는 이 수치는, 죽음의 그림자가 이미 환자의 발끝을 넘어 심장 턱밑까지 도달했음을 의미합니다.
단 2분 뒤, 먼지 냄새를 풍기며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실로 들이닥칩니다. 푸른 수술복을 입은 의료진 10여 명이 거대한 파도처럼 환자를 에워쌉니다. 인공호흡기의 기계적인 숨소리 “쉬익-쉬익-”과 환자 감시장치의 날 선 비프음이 방 안 공기를 짓누릅니다. 나는 소란의 변두리에 서서 귀를 세웁니다. 구급대원이 흘리듯 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환자의 삶을 복원할 유일한 고고학적 단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지품 없음, 정보 없음”이라는 선언이 떨어지는 순간, 발바닥 아래가 툭 꺼져 내리는 기분이 듭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나요? 휴대폰이나 가방은요?”
“축축하게 젖은 옷가지랑 담배 한 갑이 전부입니다. 길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람이라….”
허망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가로막힌 벽을 넘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배설물과 오물로 눅눅해진 환자의 옷가지를 다시 뒤졌습니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지친 목소리로 한마디 던집니다.
“에이, 아까 간호사들이 다 확인했다니까요. 헛수고하지 마요.”
그 비관적인 확신을 뒤로하고 주머니 깊숙한 곳에 손을 넣었습니다. 라텍스 장갑 너머로 눅눅하고 비릿한 감촉이 불쾌하게 타고 올라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젖은 코트 안감, 낡아버린 실밥 사이에서 묵직한 쇳덩이 하나가 탈출하듯 “땡그렁—” 소리를 내며 차가운 타일 바닥 위로 굴러떨어졌습니다.
“열쇠다!”
낚아채듯 집어 든 열쇠고리에는 때 묻은 견출지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1/42 Gangnam St.’ 그것은 단순한 주소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가던 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부여잡은 닻이었고, 세상이 이 사람을 기억하는 마지막 좌표였습니다.
곧장 사무실로 달려가 지도 앱을 켰습니다. 낡은 외벽의 정부 임대 주택 사진이 화면에 떴습니다. 유관 기관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한 지 30분 만에 수화기 너머로 믿기지 않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안 그래도 아침에 담당 보호사가 방문했다가 환자분이 안 계셔서 온 동네를 찾고 있었습니다. 바로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응급실에서 신원 미상 환자의 이름을 찾아준다는 것은 단순히 차트에 적을 정보를 얻는 행위가 아닙니다. 환자의 과거 병력을 확인해 치명적인 약물 반응을 방지하는 실질적인 안전장치이자, 소중한 사람을 애타게 찾는 이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응답입니다.
무엇보다 한 인간이 이름도 없이 세상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존엄의 끝자락을 붙드는 일입니다.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는 비로소 익명의 육체에서 누군가의 아버지, 친구, 그리고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소환됩니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찾아주었고, 그는 비로소 ‘자신’으로서 치료받을 권리를 되찾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응급실 한구석에서 매일 보이지 않는 기적을 찾아 헤매는 이유입니다.
*위의 내용은 AI의 도움을 받아 생성된 스토리로 실제 사례와는 다릅니다.
[작가 노트]
GCS(Glasgow Coma Scale, 글래스고 혼수 척도): 1974년 개발된 이후 전 세계 응급실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는 의식 수준 평가지표입니다.
평가 방식: 눈 뜨기(1~4점), 언어 반응(1~5점), 운동 반응(1~6점)을 합산합니다.
수치의 의미: 최하점인 3점은 완전 혼수나 사망을, 15점은 명료한 상태를 뜻합니다. 본문의 ‘GCS 5점’은 극심한 뇌 손상이나 대사 장애를 시사하며, 특히 8점 이하 환자는 혀가 뒤로 말려 들어가 기도를 막을 위험이 커 즉각적인 기관 내 삽입(Intubation)이 필요한 ‘응급한’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ACNM (Associate Charge Nurse Manager): 뉴질랜드 응급 시스템의 허브 역할을 하는 직책입니다. 병원 내 가용 병상을 관리하고, 구급차 이송 순위를 결정하며, 트라우마 팀(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의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합니다. 사회복지사에게 “신원 미상 환자 발생”을 통보하는 것은 ACNM이 해당 환자의 ‘사회적 처치’가 시급함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Trauma Call (트라우마 콜): 병원 전체에 울리는 긴급 비상 방송입니다. 환자 도착 전 구급대의 무전 내용을 바탕으로 발동됩니다. 방송이 나오면 심장전문의, 외과전문의, 방사선사, 사회복지사 등이 하던 일을 멈추고 심폐소생실(Resuscitation Bay)으로 집결하여, 환자 도착과 동시에 일사불란한 처치가 이뤄지도록 합니다.

Comments are closed.